내 수필 집

친구 이강호를 떠나 보내며.

생원세상 2010. 8. 13. 21:55

 

 

 

 

강호야,

너의 사망 소식에 우리 모두 뭔가 잘못 전달 된 소식인가 했다.

아니, 그 보다는 그 소식을 믿지 않으려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왜 네가 이승을 져버리고 이리도 일찍 가야 하는지

왜 네가 우리 친구들 곁을 이렇게 빨리도 떠나야 하는지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어찌 간단 말이냐.

 

너무도 서럽구나, 너무도 슬프구나, 너무 애처러워 눈물만 나는 구나.

이렇게 떠나는 너 자신은 또 얼마나 가슴 아플까

이 모든 인연을 끊고 가는 네 심정은 어떠랴

 

못다 이룬 네 꿈들도 있을 터인데

네가 가기 전에 이루어야 할 일, 해야 할 일들도

아직 많이 남아 있을 터인데 어찌 그리 가더냐.

 

네 살아온 날들이 우리 모두 가난에서 출발 하였었고

부모 형제를 위해 내 한 몸 헌신하는 그런 삶으로 시작 한

우리들의 젊은 날들 이였다.

 

우리나라가 오로지 수출로서 성장하던 시절에

너는 그 자본 마련하는 월남전까지 가서 전투하느라

얻어온 병마로 나이 들어 고생하였고

 

너는 그 수출시대의 중심에서

이 나라 무역 경제를 이끌던 무역협회에서의 활약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고향인 경기도에서도 네 역할로

무역 역군들을 위한 네 봉사가 이루어낸 발전상들도 우리는 잘 안다.

 

특히나 오정초등학교 총 동문회를 일년 만에 단단하게

기틀을 마련하고 성장시킨 그 능력을 우리는 또 너무 잘 알고 있단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부터 형제자매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우애를 항상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던 너.

 

친구들을 너무 좋아하고 스승님에게도 잊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찾아가는 그 열정과 존경심에 우리는

항상 너를 깊이 생각하게 하였던 좋은 친구였다.

 

마지막인 줄 알고 하였는지는 모르나 그래도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오랜 기간을 여행 하고 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즐겁게 산다고 하면서 모든 회사 일도 밑에 사람에게

일임하고 가볍게 지냈다는 이야기도, 즐거운 운동을 연속으로 잡고

지내던 네가

 

이제 우리 곁을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흙 한 삽 네게 뿌리던 날

나는 눈물 한번 다시 훔쳤다.

 

그리고 편안하게 쉬라고

너를 괴롭히던 갖은 병마들로부터 자유로워 지라고

속으로 기원하며 네 곁을 떠난다.

 

잘 가게나

내 친구여. 그리울 거야 영원히.

 

2010년 8월10일 김포 장지에서

덕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