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와 사진

내설악 장수대와 양양 효천 아트 갤러리-10월1일

생원세상 2010. 10. 2. 22:45

2주 전 부터 고교동창인 기준이가 양양에서 조각가로 활동하고있는 고교 동창인 신성현이네 집에

한번 놀러가자고 하여 같이 간다고 약속 한 바가 있었다. 성현이는 한전에 다니면서 양양에 있는

발전소 소장을 끝으로 하고 그곳에 전원같은 집을 마련 하고는 그곳에서 평소 익힌 조각가로서의 생활을 하고있는 친구이다.

 

 

작년도에는 2번이나 창배랑 같이 용평리조트 내에 있는 골프장에서 같이 라운딩을 하기도 했었다

두번 째 할때는 하진부에 조각전시 교육관 개관하는데도 같이 가 보기도 했었다.

성현ㄴ이네 집은 나는 한번도 같이 가 보지를 않았기에 이번에 기준이네 그리고 송병규네 이렇게 3 부부가 같이 나들이를 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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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따로 차를 갖고 가면서 가평 휴게소에서 10시에 만나기로 하였다. 춘천 가는 고속도로상에서 만나고

동홍천으로와 한계령으로 넘어갓다. 가는 길에 44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38휴게소를 지나 38대교가 소양강을 가로 지르는 교량이 새로 나있다.

이 다리는 양구쪽으로 가는 길이다. 그 소양호에 물이 이렇게 많은 건 몇 십년만에 처음본다. 물이 이렇게 많이 차 있으니 보기가 훨씬 좋다.

 

 

가는 길가 주변에는 벌써 가을의 상징인 코스모스꽃이 화사함을 드러내면서 가는 이를 반갑게 맞이 해 준다.

 

 

원래 오늘 가다가는 미천골 휴양림을 가서 산보 하다가 가기로 했는데 가다가 모두다

장수대에서 대승폭포를 가는 것으로 변경들을 했다. 장수대는 몇번 와 본 곳이라 내가 설명을 하면서 대승폭퐄까지만 올라갔다.

장수대에서 본 앞 산의 모습이 요술마을을 온 거 같은 분위기다.

 

 

이 친구들이 산행 한다고 햇는데도 산행 복장이 아니고 준비도 않되있다.

우리만 물과 행동식을 준비해와 배낭이 우리 부부만 메고있다.

 

 

이 곳을 오를 때 마다 생각나는 친구가이하나 있다. 벌써 한 7년됬나 저 세상으로 간지가.

심장마비로 별안간에 하직을 한 친구라 항상 생각이 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친구다.

이 곳에 올라가면서 거의 다 올라간 위치에 멋진 소나무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너무 멋지게 나와

집에 크게 확대 인화하여 걸어두었던 생각이 나곤 한다.

 

 

그게 아마도 20여년 전일게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계단이 없었던 시절이니

이곳을 오를 때 무척이나 힘든 코스였다.  지금은 이리 잘 만들어 놓아 쉽게들 올라간다.

내가 잘 사용하는 셀카로 단체 사진을 담았다. 요즘 이런 계단들이 많다 보니 기둥 위가 평평하게 만든 곳이 나의

디카 삼각대나 마찬가지다.  오늘도 그런 기둥 위에 디카를 놓고 사진을 담았다.

 

 

대승폭포를 감상하는 곳에는 이런  주목나무가 있어 그걸 살려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2009년도엔가 왔을때는 이 폭포에 물이 많이 내려갔었다. 몇번 와 봤지만 그때가 제일 물이 많이 내려갈 때다.

올 해 5월에도 왔을 때 물이 많지가 않았다. 그 떄는 대승령을 넘어 십이선녀탕으로 넘어가는 일정이였다.

 

 

이 것도 셀카로 찍은 것이다.

병규네 식구는 사진을 찍을 때 꼭 하나, 둘, 셋을 하고 찍으란다.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고. 별 희안한 주문도 다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저 뒤에 보이는 사람들이 떡과 커피를 주어서 잘 얻어먹고 우리는 갖고간 빵으로 대신 답례를 했다.

원두커피가 아주 맛나게 끓여와 맛있다고들 하였다.

 

 

이 곳도 우리나라 적송들이 멋지게 자라고 있어 그 운치가 정말 끝내준다.

 

 

장수대의 멋진 대표적인 소나무 앞에서.

 

 

적송 군락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도 아깝다. 이 풍경을 가슴에 담고싶어

꼭 사진으로 남긴다.

 

 

집에는 이런 소나무 군락지를 사진으로 담을 걸 크게확대하여 인화하여 걸어놓고 감상한다.

 

 

장수대 입구계곡 쪽에는 이런 기원의 돌 탑 하나가 쌓여있다.

소나무 토막과 어울어져 묘한 감정을 유발시킨다.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담아보았다.

무엇을 기원하며 돌을 모아 올렸을까. 궁금하다.

내가 기원하는 것과 같이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의 삶을 위하여 !! 일까?

 

 

성현이네  집에 도착하여 갤러리 안을 구경 먼저 히였다.

 

 

이 친구 호가 효천이였었는데 그래서 효천 아트 홀이라 만들어 놓았다.

겉의 천지창조 그림도 이곳 벽면에 조각으로 다시 태어났다.

 

 

집 정원이 넓다 보니 이곳에서 숏게임을 하며 들길 수가 있었다.

남자들은 바로 3개의 홀컵을 만들어 놓고 게임을 즐겼다.

 

 

병규와 기준이가 골프는 첨이라 서툴지만 계속 하고 하니 많이 좋아졌다,

 

 

저녁을 성현이가 바닷가쪽이라고 싱싱한 회을 많이 준비를 했다.

 

 

저녁 식사 후에 성현이가 노래로 환영 한다고 불러준다.

그리고는 옆 방인 커다란 홀로 이동하여 가보니 노래방 기기도 있어 아애 노래타임으로 바꿨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르는데 모두들 잘 부른다.

 

 

성현이가 발성연습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목소리가 아주 좋다.

성현이 집사람도 목소리가 아주 낭낭한게 듣기가 좋았고.

 

 

집안에 있는 성물 그림은 성현이가 목탄으로 그린 그림이라 한다.

 

 

꽤나 흥이 많이 있다.

 

 

가요부터 가곡 팝송까지 다양하게들 불러댄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람들의 생활속에 파고 든 노래방 문화가 우리 민족의

놀이문화를 확 바꾸어 놓았다. 또한 노래를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노래방 문화는 아주 제격이기에 급속도로 확산이 됬다.

 

 

어떠한 것이던지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면도 또 있게 마련이다.

놀이 문화라는게 건전성 유무를 떠나 즐기는 것이다 보니 꼭 건전하게만 돌아가지 못한다.

인간들의 지혜는 비 건전방향으로 가는데 그 기지를 최대한 발휘한다.

 

 

어찌되건 우리는 가정이라는 틀에서 놀다보니 그저 건전한 놀이로 갈수밖에.

서로 노래로 흥을 돋구고 서로 그 사람의 노래 소리에 시간을 즐기면서 보낸다.

놀 때는 즐겁고 적극적으로 지내는게 습관이 된게 기업에서의 기업 문화 덕이다.

 

 

같이 보내는 시간들을 기억하고자 기준이도 갖고온 디카로 기록한다.

밤 12시가 다 되도록 놀다보니 밑천도 다 떨어지고.

즐건 밤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여흥시간이였다.

나는 중국 술 54도짜리 한 병과 김탁구에서 나온 봉빵을, 기준이는 황도 한상자, 그리고 병규는 이 곳 들어오는 길에 있는

송천 떡마을에서 떡을 준비해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