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필 집

김정현 장편소설 "아버지"

생원세상 2006. 12. 23. 14:50

아들에서 아버지가 되어 살아오는 동안 아들일 때 느꼈던 , 난 커서 이렇게 살아 보겠다고 한 일들을

이 나이에 되돌아 보게 된다.

 

내 아버지는 가정 사에는 전혀 심을 두시지 않으셨다. 농사 짓는 농부 집안에서 미군부대의 근로자로 다니셨고

근로자의 대장으로 계셨으니, 관리자로서의 권위로 인해 무관심이였나 보다.  논과 밭 농사는 할아버님과 삼촌

그리고 어머니와 우리들 몫이였다. 워낙 아들들만 많아서 다정하게 아버지와 같이 어데 가본 적도 없다.

딸 하나도 없이 8형제 이다 보니 자기 자신들이 챙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모두 다 독립심들은 강하다.

내가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 되니까. 학교의 진학부터 어떠한 의논이나 상담이란 걸 해본 기억이 없다.

 

내 아버님도 식도 암으로 돌아가셨다. 발견 후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져 가면서 일년 정도 투병생활 하셨다.

어머님이 정성스레 간호셨지만 어느 며느리 한사람도 시아버님 간호 한 사람이 없다. 아들들과 그 며느리들에게

무척이나 섭섭하셨을 텐데, 그 내색 한번 들어 보지를 않았다.

 

난 아이들과의 시간을 많이 갖고 살아 왔다. 가능하면 식구들과의 여행을 하고, 특히 산에를 많이 데리고

다녔다. 너무 어려서 부터 데리고 다닌 유적지니 명승지니 하는 곳들을 애들이 자라나서 잘 기억을 못할

정도였으니. 그래도 우리 딸들은 대학까지 가서도 같이 산행하자면 항상 같이 다녔다.

제일 많이 간 곳이 오대산이다. 매년 1월1일이면 새벽같이 서울을 떠나 그 산을 애들 데리고 등반하고는

오다가 이천에 들러 온천하고 그리고 쌀밥 집에서 저녁 먹고 오는 그런 산행을 한 10 여년간 했었다.

하지만 살갑게 오손도손 이야기 하는 그런 정겨운 부녀지간의 시간들은 못 갖어 본게 아쉽다.

아버지로서 무게잡고 준엄하게 훈시하는 그런 아버지가 된거 같아 애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애들이 내게

느낀 아버지는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식구들끼리 어데 잘 다닌건 학교에서 자기들 친구들로 부터  부럽 단

이야기를 한다고는 들었었다. 애들이 아버지로서의 존경심이 어떤지는 몰라도.

 

집에 있던 " 아버지 " 라는 김정현의 장편 소설을 아침 나절에 다 읽었다.

그 아버지는 고급 공무원으로서 열심히 일만 해온 평범한 가장인데도 불구하고 가정 일이나 애들 교육문제에서는 엄마가 다 관리하고 아버지로서의 그에 대한 역활은 관여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였다. 아버지로서 애들과 같이 놀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가족과 같이 한 어떠한 추억도 없었다. 그러하니 자연히 가족들로 부터 , 애들과

부인으로 부터 동떨어진 ,떠돌이 같이 외톨이로 생활 해 오다가 췌장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만다.

 

가장 친한 친구 의사로 부터 그 판정을 받아, 우정으로서 그 아품을 달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도 처절하다.

부인과도 애정이 식어 딴방을 쓰며 지내온 세월도 길고, 아이들은 아빠의 늦은 귀가와 술에 쪄들어 들어오는

아빠를 경멸까지 해 대는 가족간의 냉냉함이 이 한 가장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하지만 한 가장으로서, 자기가 죽기 전까지 뭔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걱정하며 나름대로 준비해 주는

그의 노력을 보면, 이게 아버지라는 자리가 해야 되는, 아니 아버지 이기에 남은 식구들을 위해서 해야

되는 것이란 말인가?  식구들의 냉냉한 대우를  가슴으로 받아 들이기엔 너무나 가슴져리는 아픔이지만,

그래도 내 자식과 아내이니 그들이 내가 없어도 편히 살게 해 줘야 하는게 아버지의 사명이라 생각하는

이 아버지가 너무도 가련하다.

 

4개월의 시한부 인생이란 판정으로, 지난 날의 삶을 되돌아 보지는 않지만 앞으로 어찌 해야 되는가에 이 소설이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살갑게 대해 주는 여인을 만나 잠시, 한 순간이 나마 인간의 정다운 정을 맛보는 시간을 갖어 보았지만 ,떠나는 마당에 그에 대한 보답을 생각하는 가련하고 순진한 이 아버지가 정겹게 느껴진다.

 

남편 친구 의사로 부터 이 사실을 늦게 알고 난 후에 그 가족들이 보여주는 처절한 후회와, 아빠와 남편에 대한

사랑이 그나마 세상을 떠나는 아버지로 하여금 마음을 비워준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이승을 하직하는 아버지는 그들의 사랑을 늦게나마 가슴에 안고 갈수 있는게 다행이엿다.

 

"갈 곳이 없었다. 어딘가에 몸을 눞히고 쉬고 싶었지만 아무데도 자신을 반겨 줄 곳은 없었다.  자신이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인지 세상이 잘못 된 것인지.  이토록 처참히 버려져야 할 까닭을 몰랐다. 서글픈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소리내어 통곡이라도 해야될 것 같건만 통곡대신 웃음이 나오는 건 또 무슨 까닭인가. 마음 편히 그 몸뚱이 하나 눕힐 곳없고, 따스한 품속에서 훈훈한 사람 냄새를 맡으며 환한 아침 한번 맞을 수 없는 서글픈 인생이 가여워서 인가. "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맴돌아 혼자 떠 도는 이 아버지의 통곡이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있다는게

아버지가 되어 이 나이에 들려 올때 면 무엇이 문제인가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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