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서산의 대산 오지리 여행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렷을 때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이 자주 생긴다. 또 그 때 그 추억 어린 곳을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게 나만의 특별한 경향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귀소본능이라면 어떤가 모르겠다.
외국에 젊어서 이민 가 사는 사람들 보면 더욱 더 그런걸 볼 수가 있다. 나이들어 한국으로 오고 싶어하는 그들을 보면
내가 특별한 건 아닌거 같다. 다 나이 탓이고 나이들면 옛것이 그리워지는게 당연한 현상이렸다.
오늘은 집사람이 자기 고향을 찾아가자고 한다. 마침 장인 어른의 기일이 되기에 직접 참배도 하고 겸사로 가기로 햇다.
일찍 서둘러서 떠나면 토요일은 차가 막히지 않고 잘 갈수 있기에 서둘러 떠났다.
오랜만에 당진의 바닷가 현대제철 쪽으로해서 석문 방조제길 그리고 대호방조제를 거쳐 가는 코스로 대산의 오지리까지 갔다.
석문 방조제의 끝 자락 쪽에는 이렇게 토지주택공사에서 석문공업단지 조성하느라 건물을 멋지게 지어 놓았다.
호수 일부를 바다의 모래를 퍼 올려 메꾸는 건지 방조제 위로 이송장치들이 여러개가 설치 되있다.
비가 계속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라 바닷가 쪽으로 가 보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있었다. 바닷 바람을 맞으며 서 있자니
짠 내음이 코속으로 스며든다.
바람때문에 배들이 출어를 못하고 묶여있다.
석문 방조제에서 왜목마을로 가는 해안도로가 잘 나 있어 그쪽으로 가보니 오랜만에 와 보아 그런가
해변가로 이런 멋있는 보도용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관광지로 바뀌면서 가장 많이 변한게 이 곳 왜목마을이다.
해가 뜨는 것과 해가 지는 것 두가지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서해이기에 그 유명세가 퍼져있다.
이런 데크 사이로 바라다 보는 서해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비록 비가 오는 관계로 구름사이로 보이는 게 한계가 있어 멀리는 못 보이지만 가까운 해안 풍경은 가장 평화롭다.
특이하게도 보행 데크 중간에 이런 샤워시설을 해 놓았다.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이곳에서 샤워를 하고 들어가라는 아주 친절한 배려이다.
관광객들의 마음을 살 만한 꺼리다. 물도 세차게 나오게 장치가 되있다.
아마도 해 놓은지가 얼마 안되나 보다 모든게 다 새것들이다.
이런 시설들을 볼때 마다 난 참으로 오래 살고 볼일이다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보행데크 사이로 물이 빠져 땅에 걸쳐져 있는 배 한척이 한가롭게 보인다.
대산읍을 지나고 웅도로 들어가는 해안가에 처가집의 선산이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곳인데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이 산에서 피어나고 있는 도라지 하나가 싱그럽다.
선산에서 장인장모님에게 참배하고 주위를 들러 보았다. 옛 어른들의 묘소가 즐비하니 있는게
그래도 처가집의 이 곳 선산의 맨 위 선조 어른이 큰 벼슬을 하신 어른이시다.
이 곳을 나와 웅도로 건너가서 큰 처남의 처가집을 가 보았다. 지금 이 곳은 큰처남의 장인 장모님이 사시던 집인데
노환으로 큰 처남댁에서 모시느라 집이 비여있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이 여름날에 풀이 자라 입구 마당을 가로 막고있다.
여름날에 이곳에 처남들과 같이 내려와 자기도 하고 하던 집인데 지금은 이렇게 비여있으니
이용할수있는 방안을 찾아보아 이용해야겠다고 한다. 가끔 이곳에 들러 쉬였다 가는 그런 장소로 이용해 보자고 한다.
좋은 생각인데 얼마나 같이들 호응하여 잘 꾸며 놓고 하려는지 처남들과 상의를 해 볼 일이다.
이 웅도의 바닷가도 꽤 경치가 좋은 곳이다. 선착장이 있는 곳에 가 보면 이 만이 가로리 만이라고 해서 물결이 쎈 수로라 한다.
그래서 이 수로 가운데에 조력 발전소를 짓는다고 하는 곳이다. 이 이야기는 일제시대에도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 현실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녹색성장을 위한 좋은 제도이기도 하다.
헌데 그 지역에 가보니 벌써 반대를 위한 반대 조직들의 플랜카드가 걸려있다. 갯벌의 생태를 죽인다고. 이런 인간들 언제나 없어지려는지.
경부고속도로 반대에서부터 시작하고 외곽순환도로의 사패 터널 못하게 막던 자들까지 그 진실을 알게 됬는 데도
반대를 하는 자들이니 당연히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볼수밖에.
물이 많이 나간 시간이라 한가롭게 보인다.
잠시 비가 멈춰 바닷가 끝까지 나갔다가 비가 다시 쏟아져 도망치듯 차로 들어갔다.
오늘의 비가 아주 국지성으로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지나는 길 가의 풀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이름 모르는 꽃들도 활짝 피여있고,
소나무 숲 속도 안개로 인해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곳의 소나무들도 모두 적송들이다 보니 멋지다.
집사람이 어렸을때 놀던 해변가를 갔다. 이 곳에는 몇번 와본 곳인데 본인은 추억 어린 곳이라 그런가
죽은 후라도 이 곳에 있고 싶다고 한다. 어릴때 놀던 그 추억이 아련한가 보다.
저 큰 소나무 숲 그룹이 어릴 때 부터 있던 나무라고 한다.
저 곳이 그렇기 그리운 곳이라고 하면서.
전에 이곳에 차를 갖고 들어왔다가 바닷물이 마른 후에 나가려니 차 바퀴가 모래 속으로 계속 들어가
나올 수가 없었던 일이 있었다. 이 때 배운 게, 모래에 바닷물을 들어 부으면 모래가 단단 해 져
바로 차를 뺄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해서 차를 이 모래사장으로부터 탈출 할 수가 있었다.
동네를 지나 오면서 멀리 보이는 빨간 집 오른 쪽의 검정 기와집에 하얀 벽체집이 집사람이
태어나고 살던 집이다. 그 집에를 전에 가 보았지만 옛날과는 좀 형태가 바뀌였다고 한다.
그래도 자기의 고향동네가 옛날이나 변함이 없으니 얼마나 좋을까. 내가 살던 부천의 내 고향은 180도 완전히 바뀌여 그 흔적도 없다.
모든 이들이 내 고향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옆에서 사진을 담아보지만 그 옛날의 주위 풍경은 변함이 없다고 하니 얼마나 좋을 까.
굴을 따고 하던 바닷가로 가니 이렇게 멋진 별장이 하나 지어져 있다.
이쪽 지역은 그 옛날 피난민들이 와서 살던 곳이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곳이 이렇게 좋은 별장 지대로
변해가고 있다 한다.. 바로 바닷가에 붙어있어 경치도 좋은 곳이다.
저 앞의 작은 , 파헤쳐져 있는 작은 섬이 옥섬이라고 한다. 저 옥 섬 주위에서 굴을 따고
물이 들어오면 그 섬 안에서 물이 빠질 동안 굴을 속들을 꺼내는 작업을 하고 했다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다.
옥섬이라 하면 옥이라도 나온 건지 물으니 그건 모르고 있다.
해변가에 서 있는 배에 올라가 선장이 되 본다. 배를 운전 하고 망망 바다를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그런 기분과는 또 틀릴 걸. 바다로 나가면 보이는게 없으니 동인지 서인지 모르는데.
부처님의 말씀 중에 "원래 동이니 서이니 방향이란게 없었는데 인간들이 만들어 사용하게 되고 부터 생긴 것"이라고.
모든게 인간이 살면서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만들어 진게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그런 것이렸다.
저 배도 그러한 것 중의 하나이고. 밧줄도 마찬가지이다. 떠내려 가지 못하게 잡고 있어야 하니.
대호방조제가있는 곳의 삼길포라는 항구가 있는 데 그 쪽의 산에 새롭게 만들어져있는 골프장이 있어 한번 들러 보았다.
호텔이 있고 여가를 지낼수 있게 고급스런 휴양지 건물로 세워져 있는 곳에 이렇게 멋진 골프장이 있다.
비가 오고 있기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을뿐이다.
석문 방조제 위에 올라가 바닷가를 보니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분다. 금방 비가 쏟아 부을 거 같다.
우산이 뒤집혀 질 정도로 바람이 쎄다. 이런 바람이고 보니 아주 강한 쏘낙비가 내릴 기세다.
아니나 다를 까 석문 방조제를 지나 현대제철 쪽으로 가다보니 억수같이 내리 쏟는다.
앞이 다 흐리게 보일 정도이다. 너무 강한 비바람이다보니 차를 길 가에 잠시 세워 두고 있다가 갈까도 생각했다
잠시 머물다 갈까 했더니 금새 그 강한 비가 이동 해 간다.
가는 길에 제촐소에서는 아주 커더란 증기가 나오면서 멋진 구름을 만들어 낸다.
당진을 짜져 나가기도 전에 동쪽 하늘을 보니 훤하게 밝아온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하는데 보니 이곳은 비 한방울도 안왔다. 도로가 아주 건조 해 있다.
저녁 모임때문에 서울의 행주산성 까지 가는 길에 보니, 비가 마구 쏟아지는 지역을 지나고 또 비가 한 방울도 없는 곳을 지나고
이렇게 여러번 반복하면서 가게되였었다. 비도 제 정신이 아닌지 모르겠다.
군대에서의 게릴라전 연습하던 것과 똑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