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는 행복 지수에 따라 다르다
2003년도가을에 인도네시아를 방문 했을 때 그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 감은 우리가 생각 하는 것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나라가 우선 넓고, 지하 자원도 많이 있는 나라이고 인구도 많은 나라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그 많은 인구가 지하 자원을 개발하면 지금보다 더 윤택하게 살 수 있을 터인데 왜 그렇게 하지를 않는지.
회사에 가면 점심시간 이후에는 낮잠을 잔다. 회사 마다 기도 장을 만들어 놓고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일 하다 말고 모두 기도 하러 간다. 은행 일을 보러 은행엘 가도 일 처리 하는 시간이 한참이나 걸린다. 일이 느리게 처리 된다. 좀더 신속하게 일을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능률이, 생산성이 높아지지를 않는다. 공장에서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적다. 사람 많으니 사람으로 다 처리하는 걸로 해 버린다. 자동화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기만 한 것이 이곳 인도네시아 섬유산업지역인 반둥지역 사람들의 생활 생태이다.
길거리도 포장이 제대로 되 있지도 않다. 그러니 편도 이차로 라고 해도 차선이 없고, 있다 해도 다 지워져 있고 가느다란 선만 희미하게 보인다. 다행인 것은 중앙 선 대신에 화단 모양으로 구분 되 있는 곳이 그래도 시내엔 있다. 신호등은 사치일 뿐이다. 큰 사거리에 가끔 볼 수 있을 정도이고 좌회전 하는 곳마다에 교통경찰이 아닌 일반 인들이 서서, 오는 차를 막아주고 갈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는 좌회전 한 차량 운전자가 돈을 건네 준다. 참으로 희한한 풍경이다. 도로를 가다 보면 중간 중간 좌회전 하는 곳이면 여지없이 그들이 있어 좌회전을 도와주고 돈을 받는다. 하나의 직업 같아 보인다. 차들이 그래도 사고 않나고 잘 통행이 된다. 좀 부딧쳐도 그냥 웃고 간다. 사람들과 스쳐 지나도 그냥 간다 모두가 다.
이런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열심히 일을 하면 더 잘 살수 있을 터인데 왜 그리도 게으르게 생활을 하냐고. 공통적인 대답은 지금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고 행복하게 살고있는데 무엇 하러, 무엇을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하냐고. 참으로 충격적인 말이다. 행복하다고 지금이.
그렇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행복 지수가 그들의 것과 우리 것이 틀리는 것이다.
왜 우리는 행복의 조건을 소득 기준으로 삼는가? 왜 2만불 시대를 그리도 강조하며 ,그래야만 더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가? 2만불이 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괴리는 어찌되는 걸까? 그 괴리를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성숙된 사회가 2만불이 되면 가능 할까?
결론은 부정적이다. 결단코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 그건 행복 지수가 높은 게 아니고 지엔피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초점을 행복지수 향상에 두고 모든 정책이 이루어 져야 한다. 숫자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진정한 극민 행복을 추구 한다면.
2006년8월 여름날. 혜초


